몇해전 부터 인구통계 자료가 발표되면 어김없이 한국사회의 저출산율과 인구의 고령화 문제가 뒤따라 제기되고 있다. 정부도 현재와 같은 추세가 지속된다면 결국 전체 인구수가 줄어들게 돼 향후 고령인구를 부양할 생산층 연령의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며 다양한 출산 장려책을 강구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같은 위기감 속에서도 인구문제는 합리적인 대책보다 문제점만 부각되어 사회적인 불안감이 높아지는 실정이며, 관련 학계나 전문가들 사이에도 아직 저출산율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엇갈리는 양상이어서 혼동감 마져 없지 않다. 지난 15일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 주최로 열린 "2004년 세계인구현황 보고서" 발간기념 언론인 간담회에서도 저출산율 문제가 도마위에 올랐다. 협회 대표이며 서울대 보건대학원 명예교수인 이시백 회장은 저출산율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전망에 대한 기자들의 잇따른 질문에 대해 "공직에 있는 동안 정부의 방침과 다른 의견은 있을 수 없다"며 내년에 임기를 마치게 되면 개인적인 의견을 밝히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저명한 인구통계학자인 이 회장의 이같은 발언은 저출산율을 편향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정부와 이를 액면 그대로 부각시키고 있는 언론에 대한 불만과 아쉬움이 내포되어 있다는 느낌으로 풀이됐다. 실제로 이날 이 회장은 "인구통계는 어떠한 관점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결과와 전망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하고 "영아에서부터 노인까지 생식능력이 결여된 계층까지 포함된 출산률 산출체계는 문제가 있다"며 인구지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을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미래 사회는 첨단 과학이 인간의 능력을 대신하는 고도의 전문화 사회가 될 것"이라고 밝혀 국내 저출산 현상이 세간의 관심만큼 크게 문제시되지 않을 것임도 내비쳤다. 이시백 회장의 이런 언급은 그동안 정부와 학계 일각에서 제기해 온 우려와는 상반되는 것이며, 오히려 그렇다면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타가 공인하는 인구 전문가이자 가족보건복지 업무를 관장하는 보건단체의 총수로서 이 회장은 소신을 펴려 하기보다 말을 아끼며, 논란이 불거지는것을 덮어려 하는 인상이 역력했다. 이 회장의 이런 태도는 정부 유관 단체장으로서의 위치를 고려할때 심정적으로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국가의 인구문제는 생산과 고용, 보험과 연금 등 국가 경제와 국민복지의 장래를 좌우하는 척도이다. 그래서 인구문제에 대한 해석이나 판단은 국가전략과 밀접하며, 이를 토대로 합당한 정책이 세워져야 되는 것이다. 이런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할때 사회적으로 제기되는 저출산률이나 인구의 고령화는 눈치를 봐가며, 적당히 넘겨야 할 문제가 아니다. 특히 전문가적인 식견을 가졌고, 국가의 가족보건복지사업을 넘겨받아 수행하는 단체의 수장이라면 소신과 책임의식을 더 더욱 높여야 될 소명의식까지 요구되는 시점이다.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꼼꼼히 따져보지도 않고, 산발적인 정책 대안을 내놓거나 마치 이대론 국가의 미래가 없는것 처럼 위기감을 부풀려서도 안될 일이다. 낭비와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합리적인 정책개발을 위해 정부와 학계 전문가들이 중지를 모아야 될 일이다. 그런맥락에서 이시백 회장 처럼 문제를 들여다보는 다른 시각이 있다면 과감하게 공론화의 장을 만드는게 순서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은 가족보건복지협회의 몫일 수도 있다. 이창진 기자 (jina@bosa.co.kr) 기사 입력시간 : 2004-09-17 오전 6: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