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성분명처방 법제화, 은밀히 추진중 <주간 - 118> 2002-05-13 청년 의사 김태홍 의원실, 의원입법 추진 계획 민주당·복지부·약사회 ‘교감’ 의혹 지난달 26일 보건복지부 이태복 장관의 ‘성분명 처방 추진’ 발언에 이어 민주당의 김태홍 의원 측이 성분명 처방을 법제화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또한 서울시약사회도 100만명 서명운동과 입법청원을 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민주당-복지부-약사회 사이에 사전 조정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의료계는 총파업 등 사상 유례없는 초강경 대응 방침을 세우고 있어, 성분명 처방 법제화가 가시화될 경우 파문이 클 것으로 보인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태홍(민주당)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지난 7일 “현재 국회가 제대로 열리지 않고 있는데다가 상임위에 계류돼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 법안들 또한 상당하기 때문에, 성분명 처방을 골자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의 발의 날짜를 정확하게 밝힐 수는 없다”며, “다만 언제든지 법안을 발의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최적의 시기라고 판단되는 때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의료계에서 오리지널 약과 카피약이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제조회사만 다를 뿐이지 동일 제형, 동일 성분, 동일 함량을 그대로 카피하는데 어떻게 약이 다를 수 있겠냐”며 “의료계가 오리지널 약과 카피약이 다르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어떻게 다른지 정확한 증거자료를 제시해 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의약분업 이전에 환자들에게 카피약을 처방해 왔던 것은 의사였다”며 “이제 와서 카피약의 효과가 떨어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분업 이전에는 단순히 돈 때문에 덜 안전하고 효능이 떨어지는 의약품을 환자들에게 처방해 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밖에도 그는 “비교용출시험만으로도 효능, 효과의 동일성을 검증할 수 있는 약들이 많은데 모든 약들을 생동성 시험을 거치도록 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이는 결국 소비자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돌아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김태홍 의원이 준비하고 있는 법안이 지난 2000년 이뤄졌던 의약정 협상을 깨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15대 국회 때 이뤄졌던 의약정 협의를 파업을 빌미 삼아 제일 먼저 깨뜨리고 의약분업 전면 재검토를 주장했던 쪽은 의사였다”고 주장했다. 약사회, “서명운동 및 입법청원 추진” 한편, 서울시약사회(회장 전영구)는 이에 앞선 지난 2일 이태복 복지부장관과 오찬을 갖고 “성분명 처방과 관련한 대국민 서명을 6월 1일부터 시작할 것이며, 100만명 서명이 되면 입법청원을 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이태복 장관의 지지를 부탁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전영구 회장은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복지위 소속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성분명 처방 확대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혀, 성분명 처방을 골자로 하는 법 개정 추진이 상당히 오래 전부터 준비돼 왔음을 시사했다. 전 회장은 “의약분업을 실시하고 있는 선진국들도 성분명 처방을 하고 있는 것이 추세인 만큼 정부도 앞으로는 성분명 처방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됐다”며 “성분명 처방을 하지 않고서는 약사들의 재고약 부담과 보험재정 안정을 꾀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전 회장은 그러나 일부 언론에 나온 것처럼 장관이 적극적으로 지지표명을 한 것은 아니었다며,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장관이 뭐라고 할 수 있겠냐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이 일자 의료계는 총파업을 거론하며 즉시 반발하고 있어, 의료계와 정부 간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주수호 공보이사는 지난 8일, “성분명 처방이 법제화된다면 파업 등 모든 강력한 수단을 동원해 초강경 투쟁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대한내과개원의협의회 또한 “단순하게 생각하면 성분명 처방이 약제비의 감소와 중소 제약사의 발전을 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생동성 시험을 통과한 약이라도 함량이 최고 40% 이상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에 환자의 치료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며, “일부 환자에게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어 국민의료 수준은 오히려 하락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성분명 처방으로 전환될 경우 의사들은 대체조제가 불가능한 단일 품목의 오리지널 약만 처방하게 될 것이니 결국 건강보험 재정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료계, “초강경 투쟁” 경고 한편, 복지부장관과 약사회 임원 간의 오찬에 배석했던 보험급여과 김강립 과장은 “약사회가 대국민 서명운동을 하겠다고 밝히고 나선 데 대해 장관께서 특별한 말씀은 하지 않았다”며, “약효동등성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의약품에 대해 보험급여를 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는 정부가 의약품의 효능,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의약품들에 대해 성분명 처방을 허용할 이유가 없다”고 못박았다. 그는 또 “정부가 성분명 처방을 하겠다고 나설 경우 의료계가 반발할 것이 자명한데 정부로서는 긁어 부스럼을 만 들 필요가 있겠냐”면서, 현재 생동성 시험을 통과한 의약품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대체조제를 활성화시키는 방안을 강구한 뒤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채택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복지부 안효환 공보관 또한 “지난달 26일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조찬 간담회에서 장관이 성분명 처방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잘못된 것”이라며, “성분명 처방은 세계적 추세이며, 앞으로 생동성 시험이 어느 정도 이뤄지고 난 이후에는 성분명 처방으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뜻을 전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복지부 일각에서는 장관과 정책 실무자간의 불협화음설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책 실무자들은 의·정, 의·약 간의 입장을 고려, 성분명 처방으로의 전환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오히려 이태복 장관이 빠른 시일 내 보험재정을 안정시키기 위해 성분명 처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관 따로, 실무자 따로? 특히 이태복 장관의 국회의원 ‘출마 설’ 얘기가 일각에서 제기되면서 장관이 최근 신문편집인협회나 서울시약사회 임원들과의 자리에서 밝힌 성분명 처방 문제가 복지부가 밝히는 것처럼 별 뜻 없는 얘기는 아니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또한, 성분명 처방 추진 건과 무관하게 거론되고 있는 ‘이태복 장관, 8월 보궐선거 출마설’을 두고도 논란이 분분하다. 이와 같은 ‘소문’은 이 장관이 지난 3월 중순경, 보유하고 있던 노동일보 주식 22%가량을 모두 정리한 것에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오는 8월에는 서울 금천구에서 보궐선거가 치러질 예정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선거법에는 ‘정기간행물법에 따라 언론사를 경영하거나 편집, 취재하는 자는 선거일전 60일까지 그 직을 그만 두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이태복 장관의 한 측근은 “장관이 노동일보의 지분을 정리한 것은 국회의원에 출마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장관 취임 이후 노동일보 재임시절 때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흘러나온 것을 감안, 노동일보와 어떠한 관련도 없음을 보이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성분명 처방 법제화 추진은 일단 현재까지는 그야말로 ‘시도’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가 최대한의 저항을 보일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같은 내용들이 반복해서 언급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료계의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인 것만은 분명하다.■ 유지영 기자 molly97@fromdoct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