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 임산부·신생아 및 응급 의료체계 개선방안」에 대한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의 입장
보건복지부는 5월 26일(화) 개최된 국무회의에서 「고위험 임산부·신생아 및 응급 의료체계 개선방안」을 보고하였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이번 대책이 분만 현장의 위기를 정부 스스로 공식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번 발표는 이미 수년 전 시행되었어야 할 대책이었으며, 그 사이 무너져 내린 분만 인프라와 산부인과 의료 현장의 현실을 감안할 때 실제 효과는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지난 수년간 분만은 줄고, 분만병원은 문을 닫고, 산부인과 전공의는 떠나고, 야간·휴일 분만 대응 인력은 사실상 소진되어 왔다. 고위험 산모와 신생아가 받아줄 병원을 찾아 수십, 수백 킬로미터를 표류하는 상황은 단발적 사고가 아니라 구조적 붕괴의 결과다. 그럼에도 정부는 그동안 “필수의료 살리기”라는 구호만 반복하였을 뿐, 현장이 실제로 살아남을 수 있는 보상·인력·법적 보호 구조를 만들지 못했다. 이번 대책 역시 이 본질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 한, 또 하나의 발표일 뿐 실효성있는 결과에는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힌다.
첫째, 전원·이송체계 강화는 환영하지만, 그것은 ‘받아줄 병원이 존재한다’는 전제 위에서만 의미가 있다.
중앙모자의료센터 전원전담팀 증원, 모자의료 정보시스템 개통, 헬기 연계 확대 등은 필요하다. 그러나 권역·지역 모자의료센터에 실제로 진료할 의사·간호 인력이 없으면 모든 시스템은 무용지물이다. 정부는 ‘이송’ 이전에 ‘수용 가능한 병원’, 즉 인력확보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둘째, “인력기준 완화”는 해법이 아니라 위험 신호다.
지역 분만병원 전문의의 권역센터 당직 동원, 파트타임 근무 인정은 인력 부족을 행정적으로 봉합하려는 임시 조치에 가깝다. 지금도 당직으로 지쳐있는 일선의 분만의들을 더 갈아 넣어 시스템을 유지하려는 방식이며, 결국 또 다른 사고와 이탈로 돌아올 것이다. 근본 해법은 산부인과 인력 양성 구조, 보상 구조, 근무 환경의 전면 개편이다.
셋째, 비수도권 지원은 ‘검토’ 수준을 즉시 넘어서야 한다.
중증 모자의료센터 6개소 확충, 시니어 의사 인건비 지원, 국립대병원 산과 전임교원 증원 등은 모두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수년째 ‘추진 예정’ 상태로 반복되어 왔다. 구체적 예산, 구체적 시점, 구체적 인력 규모 없이는 또 다른 공약(空約)에 그칠 것이다. 정부는 일정·재원·책임 부처를 명시해 즉시 공개해야 한다.
넷째,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 부담 완화는 ‘속도’가 핵심이다.
배상책임 보장 확대, 불가항력 분만사고 국가보상 확대, 기소 제한 및 형 감면 등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 분만을 포기한 의사는 이미 떠났고, 남아 있는 의사들마저 형사 위험에 노출된 채 진료하고 있다. 정부와 법무부·경찰청은 법 시행 시점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수사 관행부터 바꿔야 한다. 이는 의료계에 대한 시혜가 아니라, 국민 분만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다섯째, 분만수가·신생아 진료 보상은 “가산” 수준이 아니라 “구조 개편” 수준으로 가야 한다.
임신 주수·미숙아 상태·비수도권 가산 등은 필요한 조치이지만, 분만 자체가 이미 ‘하면 할수록 손해’인 구조에서 일부 가산은 현장을 되돌릴 수 없다. 분만·고위험 산모·신생아 진료에 대해 필수의료 공공수가 체계를 별도로 설계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분만 현장은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다. 정부가 이번 대책을 발표문으로만 소비한다면, 머지않아 “받아줄 산부인과가 없어 산모와 아기가 사망했다”는 비극이 더 이상 ‘예외 사례’가 아닌 ‘일상’이 될 것이다. 그 책임은 현장을 지켜 온 의료진이 아니라, 정책 실행을 미뤄 온 정부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우리는 정부의 협력 요청에는 언제든 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장의 목소리를 실질적으로 반영하고, 실행 일정과 재원이 명시되며, 의료진의 안전이 제도적으로 보장됨이 전제되어야 한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정부가 현장의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정책을 수립하는지를 지켜볼 것이다.
2026년 5월 26일
대 한 산 부 인 과 의 사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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