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은 올해 예상되는 "의료보험 4조원 적자"를 놓고 의사들에 의한 진료비 부당ㆍ허위ㆍ과잉 청구를 삭감해 적극 비용지출을 크게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경찰청은 지난 3월 22일 특정 의약품을 사용하는 대가로 제약사로부터 금품(리베이트)을 받은 의사 86명을 입건했다고 발표했다. 시민단체들도 ‘의보재정 파탄의 근본적인 원인은 의약분업 실시 과정에서 의사들의 휴ㆍ파업을 달래기 위한 무리한 수가 인상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최근 의보재정 파탄과 관련, 그 책임을 의사들에게 돌리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적자가 발생한 액수만큼 의사들이 돈을 가져가서 그런 것 아니냐는 불만들이 우리 사회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의하면 의약분업으로 가장 덕을 본 곳은 동네의원과 약국인 것으로 나타났다. 동네의원은 처방료가 대폭 인상되고 1일 평균 환자수가 61명에서 74명으로 늘어남에 따라 월 평균 38%의 수입증가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사들은 억울하다는 표정들이다. 일단은 ‘단순히 분업 이전에 100원 하던 것을 150원으로 올려 받아서 그런 게 아니다’는 설명이다. 분업으로 인해 내원 환자 수가 크게 늘었고, 이전에 보험이 적용되지 않던 것까지 보험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의사들은 “그나마 이같은 사태도 우리가 원했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작년 6월 의약분업을 시행하면 4조4000억원의 추가비용이 든다며 의약분업 연기를 주장하지 않았느냐”고 항변한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3월 20일 ‘의보재정 파탄에 대하여’라는 성명서를 발표, ‘의보재정 파탄의 원인을 수가인상 탓으로 돌리면서 의사에 대한 대대적인 마녀사냥을 시작하고 있다. 의사 목죄기 대책이 나오는 즉시 강력 대처하는 방안을 마련해 놓고 있다”고 반발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가 의료와 관련된 어떤 대책을 세우더라도 의사를 적으로 돌려서는 그 정책이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의료 부문의 중요한 ‘공급자’인 의사들은 현재 7만4000여명 수준으로 국내 최대 전문가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신규 의사가 매년 3300명씩 사회로 배출되는 것을 감안하면 조만간 10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이들의 집단 파워를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정부가 의료 정책을 수립할 때 의사 집단과의 충분한 협의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굳이 집단 파워가 아니더라도 의료는 전문성이 강한 분야여서 의사들만큼 그 사정에 밝은 사람들이 없다. 또 정책 시행에 있어서도 이들의 협조 없이는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즉 정부가 자신들이 동의하지 않는 규제를 가할 경우 전문가인 의사들은 변칙적으로 이를 피해 나갈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아직은 의사들을 ‘국민건강을 볼모로 돈만 밝히는 비도덕적 인 집단’으로 매도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의사들을 배제ㆍ적대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면 그 정책은 실패로 끝나 고스란히 국민부담으로 돌아오기 십상이다. 우리는 이미 의약분업에서 그같은 경험을 했다. (김창기 주간조선 차장대우: ck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