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국립보건원의 후원으로 진행된 여성 건강에 관한 주도적 연구과제(WHI)에서 폐경기 여성의 호르몬 치료에 대한 연구 결과, 호르몬 투여를 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유방암은 1.26배, 관상동맥질환 1.29배, 뇌졸중 1.41배, 폐전색증 2.13배의 발생 위험이 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폐경기 증상으로 호르몬제 투여를 받고 있었던 환자들에게는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번 연구는 50∼79세의 건강한 폐경기 미국 여성 1만6608명을 대상으로 1997년 7월부터 2005년까지 8.5년간을 연구기간으로 계획된 것이었다. 따라서 이번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연구가 시작된 지 5.2년만에 나온 중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환자들에게는 놀랍고 새로운 소식처럼 들릴지 몰라도 실은 새로울 것이 별로 없다. 호르몬 치료가 유방암 발생빈도를 높이는 등 부작용이 있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그 반면에 골다공증과 골절을 예방하고 대장암과 직장암의 발생을 줄인다는 사실도 여러 연구에서 입증이 돼 왔다. 이번 연구에서도 대장암 및 직장암은 37%, 대퇴골절은 34%, 자궁내막암은 17%가 감소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다만 이번 연구에서 달라진 것은 호르몬 치료를 하면 심혈관질환의 발생을 50%정도 감소시킨다는 종전의 연구 결과와는 달리 관상동맥질환의 발병률이 1.29배 높게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관상동맥질환이 있는 여성에 대한 호르몬 치료 연구(HERS)는 1998년에 1차 보고가 있었는데, 관상동맥질환이 있는 2763명의 폐경 여성에게 프레마린과 프로베라 복합제를 투여한 결과 첫 1년간은 관상동맥질환 재발률이 1.5배로 나타났다. 그러나 계속 투여시 2∼5년간은 재발률이 의미있게 감소되는 경향을 나타냈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 후 계속 관찰한 결과는 그동안 알려져 있었던 것과는 달리 관상동맥질환 발생을 막는 효과가 없었다고 했다. 즉, 이 연구는 관상동맥질환이 있는 여성들만을 대상으로 시행한 연구로 호르몬제의 사용이 관상동맥질환의 재발을 막는 데는 별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이번 연구는 수십 종에 이르는 호르몬 치료제 가운데 여성 호르몬제인 프레마린과 프로베라의 복합제로 미국 와이어스 제약회사가 생산하고 있는 프렘프로(Prempro)라는 약과 프로베라 단독 투여만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이다. 현재 의약계에는 이 약 외에도 다양한 여성 호르몬제가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으며, 먹지 않고 피부에 붙여 흡수시키는 방법 등 투여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에 개발된 저용량의 에스트로겐 및 황체 호르몬제 등도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원인 모르게 하루에도 몇 번씩 얼굴이 달아오르고 땀이 나면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때로는 안절부절못하고 불안해지며, 우울한 생각이 들어 심한 경우에는 자살을 생각하기도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것이 40대 후반 여성들에게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폐경기 증상으로 폐경이 시작된 3∼4년 사이에 특히 심하게 나타난다. 의학계에서는 이를 급성갱년기증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문제는, 지금까지 의학적으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러한 증상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 호르몬 치료보다 더 나은 방법이 없다는 점과, 동시에 필연적인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부작용보다는 증상의 경감과 삶의 질 향상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치료를 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호르몬 치료에 의한 미국의 유방암 발생빈도는 0.1%정도이지만 우리 나라는 그 4분의1∼6분의1 정도에 불과하다. 특히 미국에서는 50대 이후에 유방암이 많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50대 이전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대개 40대 후반 이후에 시작하는 호르몬 투여가 유방암의 발생빈도를 크게 높인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므로 사전에 적절한 검사를 거쳐 부작용이 적은 약제를 선택하고 의사의 지시에 따라 이를 잘 복용하면서 정기적인 검사를 통해 신체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한 여성의 불행이나 그 가정의 불행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볼 때 호르몬 치료에 대한 막연한 공포나 속단은 없어야 할 것이다. 대한폐경기학회가 내린 결론은 ‘호르몬 치료는 계속돼야 한다’이다. /박기현 연세대 의대 산부인과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