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哲中 우리나라 암환자들은 의사들이 자신을 치료할 때 효능이 가장 우수한 항암치료법을 골라서 치료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왜 그럴까? 의사들이 의학교과서만큼이나 자주 뒤져보는 책자가 있다. 의료보험 규정집이다. 의료보험 규정에 제시된 약물이나 항암요법을 쓰지 않으면 환자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고 의사는 불법 진료를 하는 셈이 된다. 그래서 의사들은 처방전 발행에 앞서 규정집부터 찾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는 ‘유방암에는 이런 항암제를 사용할 수 있다’는 기본적인 허가사항부터, 구토를 하는 암환자에게 진정제는 하루 몇 개까지 쓸 수 있다든가, 치료효과를 판정하기 위한 CT(컴퓨터단층촬영) 검사는 최대한 몇 번 찍을 수 있다는 식의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상세히 규정돼 있다. 우리나라 의료보험 체계는 정부가 관리하는 공보험이기 때문에 암 치료처럼 의료보험에 해당되는 모든 진료는 이런 식으로 규정된다. 만일 의사가 이 규정을 어긴 채 진료를 하고 치료비를 보험공단에 청구하면, 불법 진료 가 되고 부당 청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같은 보험규정 상당수가 수년에서 십 수년이 지난 낡은 것이라는 데 있다. 그 이후에 나온 최신 치료법은 보험규정에 등재가 안 돼 있으니 아무리 우수한 항암요법이 국제학계에 수백건씩 쏟아져 나와도 국내 암환자에게는 먼 남의 나라 일이 된다. 또한 환자들이 치료비를 다 지불할 테니 최신 치료법을 받겠다고 해도, 그것은 불법 진료에 해당된다. 의료보험 적용이 되는 치료법이 있는데, 왜 의사 임의로 다른 치료를 하고 진료비를 환자에게 받아내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암환자들에게 효능이 우수한 최신 항암요법을 의사들이 쓰려해도 쓰지 못할 때가 많은 것이다. 한 암전문 국립병원 원장은 “내가 쓰는 처방 가운데는 보험규정에 없는 항암요법이 20여개나 된다”며 “하루에도 몇 번씩 ‘양심을 지키기 위한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고 공개 석상에서 털어놓기도 했다. 더구나 그 보험규정이라는 것도 융통성을 찾아볼 수 없다. 최근에는 여러 항암제를 섞어 쓰는 병용(竝用)요법이 세계적 추세이다. 그래야 암치료 효과가 증폭되기 때문이다. 새로 연구되어 나오는 항암요법도 항암제 조합을 달리해서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국내 보험규정은 어떤 항암제끼리 쓸 때만 사용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명시해 놓고, 나머지는 인정을 안 하고 있다. 새로운 병용요법이 곧바로 적용될 수가 없다. 정부는 왜 이런 비합리적인 보험규정을 바꾸려 들지 않는 걸까? ‘문제는 돈’이라고 한다. 의약분업 이후 급격히 늘어난 건강보험 재정적자로 최신 항암요법을 즉각 의료보험에 적용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대신 환자들이 꼭 최신 항암요법을 받고 싶다면, 진료비 전액을 자신이 부담해서 받는 것은 허용하겠다는 태도다. 과연 한 달에 수백만원씩 들어가는 암치료 비용을 감당할 사람이 몇이나 될 지 의문이다. 건강보험공단이 지난해 사망원인 1위인 암 치료에 지출한 돈은 전체 의료비 지출의 6%도 안 된다. 그러고도 의료보험 재정이 축 난다고 제대로 된 항암치료를 가로막고 있으니, 이건 소 뿔을 다치지 않게 하려다 소를 죽이는 ‘보각살우(保角殺牛)’라고나 해야 할까? ( 金哲中/ 의학전문기자 doctor@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