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실시 이후 외국계 제약사들의 국내시장 점유율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난해 외국계 제약사들의 국내 매출은 40% 이상 늘었다. 반면 국내 제약사의 매출 상승은 5% 안팎에 머물렀다. 외국계 제약사들의 시장점유율은 의약분업 이전의 17%선에서 28%선으로 껑충 뛰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4분기 의료기관의 외래환자 처방전을 분석한 결과, 금액별로 상위 10개 약품이 모두 외국계 제약회사의 의약품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는 의약분업 이후 의사들의 처방이 외국계 제약사의 이른바 ‘오리지널약(약품 개발 특허를 갖고 있는 약)’에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의약분업 이전에는 약값 마진이 좋은 약을 주로 처방하거나 판매했으나, 의약분업 실시 이후 약값으로 인한 수익이 거의 없어지자 의사들은 이왕이면 효능이 확실하고 기존의 약효를 개선한 신약(新藥)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약은 같은 성분의 카피(복사)약보다 단가가 훨씬 높아 가뜩이나 어려운 건강보험재정을 압박하는 요인이 되고도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고가(高價)약 사용을 억제하기 위해 ‘참조가격제’라는 제도를 오는 7월부터 시범시행할 방침을 세웠다. 약값이 비쌀 경우 일정액수만 의료보험에서 부담하고 나머지는 환자가 부담하는 제도다. 이 제도의 적용대상이 될 약들은 거의 모두 외국계 제약사의 오리지널약들이다. 국내 제약사들의 약 사용을 늘려 보려는 일종의 ‘쿼터제’인 셈이다. 이 제도는 거대 자본의 할리우드 영화로 존폐 위기에 몰렸던 국내 영화 보호를 위한 ‘스크린 쿼터제’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한국 영화는 우수한 영화를 제작함으로써 요즘의 부흥기를 맞고 있다. 국내 제약사들도 결국은 우수한 신약을 개발해 국제 경쟁력을 갖추어야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 제약사들의 현실은 매년 수백억원을 쏟아부어야 하는 신약 개발을 하기에는 너무나 영세하다. 600여개의 제약사가 난립하다 보니 한해 매출액이 5000억원 이상인 대형 제약사는 전무한 실정이다. 국내 매출액 1위인 동아제약도 미국 머크사 한 개 회사 매출액(20조)의 40분의 1에 못 미치고 있다. 또한 외국계 제약사들은 매출액 대비 10∼30%를 연구 투자비로 지출하고 있는 데 반해, 국내 제약사는 3~4%에 머물러 있다. 그러니 새로운 약물 개발은 요원하고, 외국의 오리지널약을 카피해 만들어 파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한 품목의 외국약을 국내 59개사가 동시에 카피 제작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한 제약회사 회장은 “외국 약 수입권을 놓고 과당경쟁을 벌이면서 국내 제약사들은 국제 거지가 돼 간다”고 탄식하기도 했다. 물론 제약업계에는 인종적 또는 개인의 유전적 특성에 따라 치료제를 달리하는 ‘맞춤 의약품’ 시대가 오고 있으며, 이른바 ‘블록버스터’형 약물보다는 다(多)품종 소량생산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아직 신약 개발의 여건이 형성돼 있지 않아 세계적인 추세에 제대로 발걸음을 못 맞추고 있다. 우리의 현실은 한 제약사가 개발한 물질을 다른 제약사가 화학구조를 조금만 바꾸어 시장에 내놓아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형편이다. 이 때문에 제약업계에서 ‘쉬리’의 출현은 멀기만 한 남의 일이다. 영화계에서는 우리 영화를 봐주겠다는 젊은 층들의 의식도 있었고, 뜻있는 제작사나 감독들의 의욕적인 투자가 있어 대박을 터뜨린 국산영화가 나왔지만 국내 제약업계는 그렇지가 못한 현실이다. 의약분업 실시로 국내 제약사들의 약을 써주겠다는 의식도 희미해진 데다가 제약사들의 과감한 투자도 기대할 수 없는 여건에서 앞으로 외국제약사들의 약만 횡행하게 된다면 21세기 생명과학을 이끌 우리의 제약산업은 도대체 누가 책임질 것인가? ( 金哲中 / 전문기자·의학박사 doctor@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