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시민단체, “실효성 없고 국민 부담만 증가”
복지부, “불필요한 처방 없애야”, “앞으로도 확대할 것”
지난 1일 979개 일반의약품이 비급여로 전환되면서 의료계와 제약업계, 시민단체 등 각계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11월과 지난 1월 비급여로 전환된 품목을 합하면 총 1,413개 품목이 급여에서 제외
된 것인데, 이러한 일반약 급여 제외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예상 속에 그 파장은 더욱 커질 전
망이다.
이번 일반의약품 비급여 전환은 소화제 등 불필요한 처방이 과다하게 이뤄지는 품목에 대한 제재라는
측면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졌듯이 보험재정 안정화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건복지부 연금보험국 문경태 국장은 “미국 등 돈이 많은 나라들도 의사들이 처방하고 있는 일반의
약품에 대해서는 급여를 인정해 주지 않고 있다”며 “재정이 열악한 우리나라가 소화제와 같은 일반
의약품에 대해서도 보험급여를 인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문 국장은 “경증질
환에 대한 보험급여를 줄여 나가고 여기서 절감된 재정으로 중증질환에 대한 급여를 확대하는 것이 바
람직한 정책”이라며, “앞으로도 일반의약품들은 어떤 난항이 있더라도 비급여로 전환해 나갈 것”이
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한내과개원의협의회 신창록 보험이사는 “세 차례에 걸쳐 비급여로 전환된 일반의약품이 대
부분 감기나 위장질환 환자들에게 사용되는 의약품인데, 내과 내원 환자 중 가장 많은 질병이 감기나
위장질환”이라며 “보험재정 절감을 위해 환자의 병원 내원 일수를 줄이려 한다면 그만큼 병원 수입
이 보존될 수 있는 대책이 선행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비급여를 늘려서 약국의 일반약
판매가 늘게 된다면 이는 약국의 임의조제를 허용하는 정책이 될 우려가 있다”며 “약국의 임의조제
규정이 명확하지 않고 단속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일반의약품의 비급여를 확대하
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건강연대는 성명서를 통해 “일반의약품이 보험에서 삭제되더라도 의사가 동일하거나 유사한 효
능의 보험약으로 처방을 변경하게 되고, 특히 제약회사가 보험에서 제외될 약제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효능의 다른 약을 보험약으로 공급하기 때문에 일반의약품의 비급여 전환은 정부의 의도와 달리 보험
재정 절감은커녕 오히려 보험약가 지출을 더 증가시킬 수 있다”며 “국민의 약제비 부담만 가중시키
고, 실제 보험재정 절감효과는 없는 일반의약품의 보험적용 제외 정책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
다. 이와 함께 건강연대는 비급여로 전환된 일부 약제의 가격이 최고 3배까지 비싸졌다는 자체 조사
결과를 제시했다.
“처방권 침해 - 종전 처방 고수”
복지부가 이런 정책을 추진하면서 내세운 가장 큰 명분은 ‘건강보험 재정 절감’이다. 단순하게 생각
하면 현재 급여 항목인 일반의약품 중의 일부를 비급여로 돌리면 당연히 건강보험 재정은 절감되게 된
다. 하지만 의사들의 처방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는 곧 고스란히 국민부담으로 옮겨진다. 때문에 건강
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이에 반발하고 있는 것이고, 비용을 더 지불하게 된 환자들의 불만이 의사들에
게 돌아올 것을 우려하는 의료계도 크게 저항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의료계는 ‘처방권 침해’라는 주장과 함께, 적어도 겉으로는 ‘종전 처방 고수’ 방침을 밝히
고 있다. 의협은 지난달 29일 성명서를 통해 “잘못된 의료정책이 보험재정을 파탄지경에 이르게 했음
에도 일반약 비급여라는 임시방편카드로써 위기상황을 넘기려고 한다”며, 회원들에게 “비급여 전환
에 흔들리지 말고 환자의 이해를 구하면서 그동안 처방해 왔던 대로 소신처방을 내달라”는 지침을 내
렸다.
그러나 이에 대해 복지부는 상당히 불쾌하다는 입장이다. 연금보험국 문경태 국장은 “의협이 일반의
약품의 비급여 전환 정책을 시행한 이후 부작용이 발생하는지 지켜본 후 소신처방 지침을 내렸다면 이
해할 수도 있겠지만 제도를 시행하기도 전에 그와 같은 지침을 내린 것은 정부 정책에 무조건 반기를
들겠다는 의도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의협은 “소신껏 처방하겠다는 의협의 입장에 대해 정부가 마치 반기를 들고 악의적으로 환자에
게 부담을 주는 행위로 단정짓는 것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며 “환자에게 꼭 필요한데 비급여 품목
에 포함됐다고 해서 다른 약으로 대체한다면 과연 보험재정안정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
다. 이 문제로 인해 의-정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복지부의 미숙한 일처리가 화근
하지만 이와 같은 문제, 즉 비급여 전환된 의약품을 그대로 처방함으로써 국민 부담을 늘릴 것인가 혹
은 급여가 인정되는 비슷한 의약품으로 대체처방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이번 논란의 ‘진짜’ 핵심
은 아니다. 단지 위의 두 가지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면, 어느 것도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 수 없다
는 것은 누구나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당연히 의사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정
책’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즉 애초에 복지부가 가졌던 ‘의도’는 보험재정 절감을 위해 국민 부담을 늘리는 것도 아니었고, 보
험재정 절감효과가 없는 의약품의 대체도 아니었다는 말이다. 복지부가 이 정책을 고려하게 된 출발
은 소화제 등 ‘꼭 필요하지 않은 일반의약품’의 처방이 지나치게 많다는 데에 있었다. 실제로 일부
의약품의 경우 불필요한 처방이 있다는 것은 의료계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 것은 복지부의 미숙함이었다. 처음부터 이런 취지를 의료계에 잘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
더라면 훨씬 부드럽게 시행됐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복지부는 자세한 부연 설명 없이 ‘급여 제외’
와 ‘재정 절감’이라는 말만 강조함으로써 의료계와 시민단체 모두의 강력한 반발과 비난에 직면하
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불필요한 처방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급여에서 제외할 만큼 모
두에게 불필요한 약은 거의 없다”는 짧은 설명으로 복지부의 단견을 지적했다. 좋은 명분이 있고 실
질적으로 의료계에는 거의 피해가 없는 사안이므로 의료계의 협조를 얻을 수 있었던 일인데, 복지부
가 독단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의협이 ‘종전 처방 고수’를 회원들에게 요청하자, 뒤늦게 “비급여로 전환되는 일반의약품
의 경우 환자 치료에 꼭 필요한 처방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제도 시행 이후에도 불필요한 처방이 줄
지 않고 여전히 계속된다면 민원이 많이 제기되는 의료기관들은 현지 확인심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상황은 악화된 이후였다.
의사들의 처방, 실제로는 바뀌는 중
의협의 방침과는 별개로 실제 현장에서 의사들의 처방은 바뀌고 있었다. 소화제 및 제산제, 종합감기
약, 칼슘제 등 이번 비급여 전환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내과의 경우, 특히 개원가에서는 급
여가 되는 품목으로 처방을 변경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급여가 되는 유사 품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환자에게 부담을 주면서 비급여 품목 처방을 내릴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일
부 개원가에서는 종전대로 비급여품목을 처방하겠다고 밝히고 있기도 하다.
정형외과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형외과개원의협의회 백경열 부회장은 정형
외과 개원가에서도 굳이 비급여 품목에 대한 처방을 할 이유는 없을 것이라며, 대체 제제를 처방하거
나 병명을 추가하는 등의 방식을 취하고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한 정형외과 개원의는 최근 기존에 사용하던 소화제 대신 돔페리돈, 레보설프라이드 등과 같은 전문약
을 처방하거나, 급여가 인정되는 제산제 등을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움직임은 가정의학과,
소아과 등 다른 과 개원의들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본지가 취재한 몇몇 약국들에서는, 전체 처방전 가운데 비급여 전환된 의약품이 포함된 처방전은 약
2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종합병원에서는 기존 처방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향이 훨씬 많
았다. 실제로 대학병원 앞의 약국들에서는 “별로 처방이 달라진 것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제약업계는 발빠른 움직임
우리 나라 소화제 시장은 연 620억원 규모다. 그러나 이 중 상당액이 의사들의 처방에 의한 것이었음
을 감안할 때 소화제 시장은 축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약업계는 비급여 전환에 대해
서둘러 준비에 들어간 관계로 최근 급여에서 제외된 소화제와 제산제 등 종합제의 후속제품으로 단일
제가 속속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그 축소 폭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대웅제약은 이미
알루미늄, 마그네슘, 시메티딘 등의 복합제인 ‘미란타’의 후속품목으로 알루미늄과 마그네슘만을 함
유한 ‘뉴란타’를 출시했으며, 다른 제약사들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한 제산제 시장은 비급여 전환 품목이 상대적으로 적은데다 소화제 대체 제제로 제산제가 선택될 가
능성이 높아 오히려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지난 2000년 이후 급격한 하락세를 기
록했던 위장관운동촉진제 시장도 성장세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복지부는 이런 제약업계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문경태 국장은
“국민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제약회사들이 편법을 동원해 이득을 챙기려 하고 있다”면서, “제약회
사들이 성분을 줄여서 효능이 비슷한 의약품을 출시하더라도 보험 급여를 엄격히 제한할 것이며, 앞으
로는 의약품을 신규 등재할 경우 약제전문위원회에 의약품 원가분석자료를 첨부해야 한다”고 말했
다.
이번 논란의 교훈과 전망
복지부의 이번 조치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복지부가 ‘악수’를 뒀다는 쪽이다. 가장 큰 이유는 보
험재정 절감효과가 별로 없는 가운데 오히려 꼭 필요한 처방조차 제한됨에 따라 국민 건강에 악영향
을 끼칠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또한 소화제나 제산제의 빈번한 처방 등의 오랜 관행이 쉽게 바뀌
지 않을 것이므로 국민들의 부담만 늘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의료계와 복지부 사이의 불
신의 골이 이번 논란이 더욱 깊어진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 복지부는 ‘불필요한 과다처방’을 줄이겠다면서 실제로 그에 대한 임상적인 근거자료도 제시하지
못했고 게다가 이번 조치를 통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보험재정 절감효과가 발생할지도 예측한 바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의약분업을 시행했을 때 어느 정도의 비용이 소요되는지 파악하지 못
해 보험재정이 파산지경에 이르게 했던 주먹구구식 행정의 전철을 다시 밟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앞으로 의사들의 처방 패턴에 어느 정도의 변화는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그 변화가 얼
마나 크게, 또 어느 방향으로 일어나느냐에 따라 국민들의 불만 및 의-정 갈등의 양상이 달라질 전망
이다. 정부가 수습 차원에서 더욱 무리한 정책을 추진할 경우 상상외로 큰 파장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다.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주장이 거의 완전히 일치하고 있는 데다가 여론도 정부의 조치에 부
정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부 내과계 개원의들의 우려처럼 이번 조치가 전체 내원환자를 줄인다거나 약사들의 불법진료
와 임의조제를 늘리는 파생 효과를 낳을 경우 그 파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복지부가 어떠한 보완책
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유지영 기자 molly97@fromdoctor.com
곽상희 기자 opensky@fromdoct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