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보험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
의보재정 통합 여부를 둘러싸고 정부, 여당, 야당 모두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
팡하고 있다. 한국노총, 민주노총은 물론 시민 단체들도 자기네들 목소리 높이는 데
만 매달려 있다. 그동안 정책 오류의 희생양이었던 국민들은 이번 사태가 언제 어떤
형식으로 귀결될지 헷갈리고 불안할 뿐이다. 정부의 중심 없는 처사가 너무 한심스럽
다. 정말 불쌍한 건 국민이다. 이러한 사태로 가중될 부담과 고통은 전부 국민 몫이
기 때문이다.
의보 제도가 도입된 지 36년이 됐다. 본격 실시된 지도 24년이나 됐다. 하지만 정부
나 정치권은 의료보험제도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고 무책임했다. 김대중 정부는 지난
97년 대선 과정에서 의보 통합을 공약하면서 ‘통합하면 보험료가 경감되고 부담도 공
평해진다”고 했다. 98년 집권 후 그 해 10월 지역의보와 공무원 .. .. 교육의보를 통합했
다. 2000년 7월에는 직장의보까지 통합했다. 한마디로 의보 운영시스템을 완전히 국가
관리체제로 변혁시켜버렸다. 다만 자영업자에 대한 소득파악이 되지 않아 통합과 함
께 곧바로 소득을 기준으로 하는 단일 보험료 부과기준 마련이 어렵기 때문에 2001년
말까지는 직장·지역의보 재정을 분리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즉 보험재정 통합은 자영
업자에 대한 소득파악과 단일의 보험료 부과 기준 마련이 그 전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의보 통합을 추진한 지 3년이 경과된 지금 정부의 선전·공약과는 달리 모두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불과 3년 만에 온 국민이 20여년간 땀 흘려 적립한 보험준
비금마저 모조리 소진해버렸다. 전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던 보험료의 인
상과 국고 투입 확대로도 모자라 지금은 2조원의 금융차입에 의존해 하루하루 진료비
를 때우고 있다. 환자 본인 부담을 높이고 보험혜택은 대폭 축소하는 조치마저 취했
다. 이제 담배 피우는 사람들한테까지도 진료비를 부담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지 못하고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논쟁과 책임회피만 하고 있는 듯하다. 필자가 누차 지적했듯
이 의료 보험이 파탄난 근본 원인은 사회보험으로서의 기본 정신과 100여년에 걸친 선
진국의 경험 및 우리의 30년 경험에 너무 무지했던 데다 현실마저 도외시한 의보 통합
에 있다. 무책임하고 공허한 정치논리로 이론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검증된 의보 운영
시스템을 사회주의식 국가관리체제로 변혁시켜버렸기 때문이다.
사회보험으로서의 의료보험은 보험료를 부과하고 징수하며 인상·조정하는 수입구조
와 진료에 따른 보험 급여비 지급이라는 지출구조 양쪽 모두에 안정기반이 마련되어
수지 균형을 이룰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그것은 가입자가 보험운영에 참여하여
자율과 자치가 보장되는 시스템일 때만이 가능하다. 책임과 능률이 결여될 수밖에 없
는 사회주의식 국가관리 방식으로서는 불가능하다. 이것은 보험 이론이기도 하며 그간
의 운영 경험이다. 이러한 제도의 기본 정신과 자영업자에 대한 소득파악이 되지 않
은 현실을 감안할 때 직장·지역 의보의 재정통합은 불합리하며 불가능하다. 실제로
제도를 운영하는 보건복지부나 보험공단도 현 상태에서 재정통합이 불가능하다는 것
을 알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고 속앓이만
하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이제 와서 재정을 분리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데에 심각성
이 있다. 사안이 이러하기 때문에 의보재정 통합은 일단 일정기간 유보하면서 보험재
정 파탄의 동전의 양면이라 할 수 있는 의약분업과 함께 사태의 본질을 냉철하게 파악
·분석해야 한다. 그런 연후 그간의 경험과 현실을 바탕으로 사회보험의 근본정신에
부합되고 자생력 있는 의료보험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
( 경산대객원교수·한국복지문제연수소장 )